배현준 Bae Hyeon jun <품 [The Affair]>


2019년 06월 05일(수) - 06월 18일(화) 


[전시 서문]

지구의 밤과 낮이 동시적이고 순환 반복하듯, 갯벌의 흔적들은 시점에 따라 음각으로 양각으로 이미지를 드러냈다. 이런 음각과 양각은 동일체의 다른 양상인 착시이며, 출몰을 반복하는 갯벌의 흔적들과 같이 순환 반복될 뿐이다. 이런 경험이 이번 작업에서 음과 양의 동시성과 순환 반복성, 음과 양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계 - ‘사태 [The Affair]’를 통해 '세계의 시공간성'을 말하고 있다.

갯벌의 [품]은 음양의 경계를 넘어서 음양을 [품]는다. 시작과 끝을 [품]는다. 삶과 죽음을 [품]는다. 경계를 넘어서 자유를 [품]는다.


갯벌 위의 흔적들은 조류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그 흔적들은 아름답지만 이내 사라지고 말아 허무하다. 아름다운 허무다. 그러나 흔적들은 다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동일자의 영원회귀다. 이렇게 순환하는 갯벌의 시간은 반복될 뿐 지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찌 보면 인간이 만든 총량적 시간이란 관념일지도 모른다.


그 흔적 중에 새발자국의 이미지는 눈길을 끌었다. 육안으로 보면 음각이었으나 이미지는 양각이다. 새발자국이 날아가고 있었다. ‘새는 발자국도 난다.’라고 표현하니 흥미로웠다. 그런데 다시 위치를 바꿔 촬영하자 그것은 음각으로 나타났다. 빛의 방향에 따라 이미지가 변한 것이다. 그러나 새발자국은 그대로 변함없다.


우리의 세계인식은 빛의 반사를 시지각으로 인지한 내용이고, 빛의 위치에 따라 대상에 대한 내용이 달라지면 시지각에 의존한 세계인식은 불완전해 진다. 그리고 시지각이 인식한 내용을 추상화한 선형문자로 개념화하고, 또 문자로 표현하는 주체의 주관적 인식이 반영되면서 세계인식은 더욱 불완전해 진다.


사람들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밤은 밤으로, 낮은 낮으로 구별하여 선형적 문자로 개념화한다. 그런데 지구의 밤과 낮은 동시적이면서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으로 순환된다. 밤과 낮이 하나가 된다. 이렇게 낮과 밤에 대한 인위적인 개념에서 벗어나면 밤과 낮은 동일자로 영원 회귀하는 순환론적 세계인식 논리를 갖게 된다.


이렇듯 세계 인식에서 ‘나의 시선 – 인위적인 개념’을 비우면 경계가 사라진다. 낮과 밤이 동시에 존재하듯,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 빛도 어둠도 하나인 세계, 인위적인 구별이 없는 세계만 남는다.


갯벌의 흔적(세계)도 부감俯瞰의 앵글로, ‘이아관물以我觀物에서 이물관물以物觀物’로 관점을 바꾸자 객관화된 물자체가 본질을 드러낸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구분했던 세계는 경계를 넘어 이종융합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표현된다. 이젠 음양도 새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충만한 의미를 만들어 내는 「사태」가 된다.


선형적 문자의 시대, 역사의 시간은 절대성을 지향한다. 그러나 말씀의 시대가 사진영상의 시대로 대체되면서 시간은 혼재되는 사태 – 영원회귀의 허무주의에 도달한다. 이제 남은 것은 절망이 아니라, 절대성에서 벗어난 개인의 자유다. 괴델 예셔 바흐의 세계처럼 경계를 횡단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우연에서 필연으로 필연에서 다시 우연으로, 재현에서 상징으로 관념에서 물자체로 환원하여 세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나의 작업 방식은 지극히 디지털적이다. 합성, ‘바느질(봉합)’의 과정을 통해 재구성된 화면 속에서 나의 철학적 담론을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한 사진 중에서 내 의도에 맞는 사진을 선택하는 과정보다 촬영한 사진들을 재구성Making Photo하는 과정을 택했다. 피사체를 오려내어Framing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를 분해하고 재구성해서 물자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추상적 관념 – ‘갯벌(세계)의 시간성’을 표현하려 했다.


10 년 전, 우연히 갯벌을 만났다. 그 갯벌 - 『모성의 발견』(2011)이 날 위로했다. 그리고 갯벌의 『흔적』(2015)에서 ‘아름다운 허무주의’를 보았다. 그러다 갯벌에서 10 년이 지났다. 갯벌 한 복판, 자연이 된 체험 속에서 사진이 날 위로하는 날들이었다. 그런데, 이젠 ‘철학하는 사진’을 꿈꾼다. ‘미술의 역사는 철학의 문제로 점철되어 있다.’라고 말하듯 사진의 역사도 그렇다. 여행 속에서 여행을 꿈꾸듯 사진 속에서 사진을 꿈꾼다. 갯벌의 흔적이 나에게 빌려주니 어찌 말이 없을 것인가?


[작가노트] 

1. 빛이 대상을 명암으로 구분하여 형체를 드러내면 사람들은 그것을 시지각으로 인지한다. 또 빛의 방향에 따라 대상은 명암이 교체되면서 시지각으로 인지하는 내용도 변화된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이해는 빛의 변화에 따라 불완전해 진다. 이러한 사실은 시지각의 불완전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각을 통한 인식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일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감각을 통한 인식의 불완전성뿐만이 아니라, 감각적 지각의 세계를 언어화한 개념 역시 인위적인 편의일 뿐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시공간의 경험도 감각적 인식에 의존하여 개념화하고 세계를 구분하고 있지만 존재의 본질은 하나이며 변함없이 그 자체이다.


또한 대상의 본질을 범주화하고 개념화하여 인식하는 구성주의적 사유는 차이와 경계를 통하여 세계를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의 세계는 빛의 방향에 따라 명암이 교체되고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고정된 요소들의 집합이 아니고 생성 성장 소멸 생성이라는 순환의 고리를 통해 경계가 사라지는 메비우스의 끈과 같다. 따라서 세계를 구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순환주의적 시각으로 돌려보면 주체(- 인위적인 세계 인식의 주체)는 사라지고 경계가 없는 연기적 세계만 남을 것이다.


대체로 존재는 시공간에 존재한다. 그런데 <나-(인위적인 개념)>란 존재를 비우면 무궁한 시공간의 경계가 열린다. 그렇다면 시공간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는 무엇일까? 무엇이 있을까?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 아니 빛도 어둠도 없는 세계 - 인위적인 구별이 없는 세계만 남는다. 無, 圓融無碍의 경지만 남지 않을까? 그때 존재자는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2018. 4. 10)


2. 풍경의 프레임에서 시선은 피사체와 동떨어져서 피사체를 객체화(대상화)시키고 있지만, 부감법의 시선으로 프레임 가득 피사체를 담아내는 구성에서는 피사체가 '주체'가 된다.

갯벌의 '흔적' 사진에서 표면만을 프레임에 가득 채울 때 갯벌은 시선의 간섭은 사라지고 존재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러나 피사체가 가진 특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은 기본적인 요소일 뿐 여전히 대상을 해석하는 작가의 주관적 시선은 감춰진 것이다. 오히려 작가의 철학적 해석을 관객의 시선으로 단순화시키는, 말하자면 단순 '풍경'으로 바라보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화면에 갯벌 표면이 가득 찰수록 갯벌이 주인공이 되면서 작가의 의도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다.

풍경 -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라지고, 풍경이 주체가 되어 프레임을 구성하면서 피사체의 본질에 몰두하게 된다.


이아관물以我觀物에서 이물관물以物觀物로의 관점 변화는 프레임을 구성하는 시선의 변화에서도 시사하는 부분이 있다. 이아관물에서는 프레임을 구성하는 사람(작가나 독자, 감상자)의 시선에 따라 내용이 구성되고 피사체는 대상화되지만, 이물관물의 관점에서는 프레임을 구성하는 주체는 물러나고 프레임을 구성하는 피사체가 온전하게 중심에 드러나게 되면서 객관화된 물 자체의 본질을 경험하게 된다.

세계를 바라보는 주관적인 시선을 해체하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다. 그곳에서 세계는 자신의 본질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음과 양, 오목과 볼록, 빛과 그림자, 실체와 이미지 등, 대립물로 인위적으로 구분했던 세계는 하나가 된다. 때론 경계를 넘어가기도 하고, 때론 이종융합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아름다운 허무’는 감상적인 허무·상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관과 객관, 인위적인 Day and Night 또는 Concave or Convex 가 반복 교차하는 가운데 융합 일체가 되어 새로운 ‘무(無)’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황홀’하는 것 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율동을 보여주는 곳이다.  (2018.3.30)


3. 우연을 필연으로, 역으로 필연화의 과정에 우연적인 의미를 추가한 것이 ‘음양 - Concave or Convex Series’ 작업이었다. 재현과 상징에서 물자체로 환원하여 세계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로 ‘바느질(봉합)’의 과정을 택했다. 이 작업 과정 속에서 <세계는 ‘음과 양’이 순환되고 ‘동일자의 반복회귀’>라는 의미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오늘날 디지털 사진은 회화가 되었다. 재현이 아니라 표현이고 더 나아가 상상력이 더해진 현실의 해석 이상(以上)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적 상상력 기술적 상상력이 새 시대를 열어가는 철학적 담론-에피스테메-를 담지 못한다면 단순한 유희에 불과하다.


외관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려는 유미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재구성된 화면을 통해 본질을 직접 드러내려고 한다. 물론 유기적 총체성을 구성하기 위해 프레임의 완결성이나 피사체의 물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철학적 담론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내 그림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존재의 양식이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형식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립물이 형식논리상 차이(대립)가 있지만 A는 B가 되고 B는 A가 되는 논리적 모순을 말한다. 결국 A=B이고 B=A이면서 A와 B는 서로 교차 반복 순환 과정을 보여주는 ‘동일자의 반복 – 영겁회귀’라는 것이다.

갯벌 흔적 사진에서 명과 암, 빛과 그림자, 실체와 그림자가, 실제와 이미지가 순환 반복되면서 명·암이 빛·그림자가 사태(서로 영향을 주면서)가 되어 새로운 미적 가치 - 『아름다운 허무주의』를 지닌다.

삶은 그 어디를 향해 나가는 지향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세계는 동일자(세계 그 자체)의 무한 반복 순환이란 말이다. 그 반복 순환은 대체되는 과정 – 시간의 흐름이기보다는 동일자의 양성(동일자의 공존형식) - 동일자의 공존이다. 『‘순환 반복’(니체)이 아니라, ‘동일자의 사태’(플루서)이다』


상반된 것들이 반복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동시성을 띄기도 한다. 지금의 북반부가 낮일 때 남반부는 밤인 경우와 같이, 동일물에 나타난 이질적 현상은 착시적 현상일 수 있다. 왜냐하면 존재의 근원은 하나의 동일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립적 현상이 동일물의 착시라면, 2분법적 세계인식에서 발생하는 구별은 무의미해 진다. 또한 그러한 관점을 인간의 삶의 문제와 연계할 때(이러한 연계가 문학적인지, 일관성을 가진 세계관의 관점인지, 또는 심리학적 차원인지 고려할 가치는 있다.) 삶의 모습도 죽음의 모습도 선형적 시간성의 차원에서 볼 때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나 순환론적 시간성을 고려하면 동일물의 다른 양상일 뿐 본질(근원) 자체는 하나라는 것이다. 결국 모순된 삶의 모습은 동시성 동일성을 가진 세계의 사태이다.


나의 구성은 우연적이다. ‘인과의 연쇄’가 내용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연성의 조합이 내용을 구성할 뿐이다. 이곳에는 계몽은 없다. 존재하는 것을 지양하고 존재할 모형을 만들어낸다. 그 동일 선상에 내 사진은 Taking Picture가 아니라 Making Picture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작가인 나는 Programing 하는 사람이다




[작가 약력]


학력

1988     공주대학교 국어교육 졸업


개인전

2015     흔적, 달의 숨결 사이로(Trace, between the Moon Small Breath), 장항문화예술창작공간, 서천

           흔적, 달의 숨결 사이로(Trace, between the Moon Small Breath), 강화종합전시관, 강화도

           흔적, 달의 숨결 사이로(Trace, between the Moon Small Breath), 천안예술의전당, 천안

           흔적, 달의 숨결 사이로(Trace, between the Moon Small Breath), 갤러리 나우, 서울

2011     모성의 발견, 갯벌(Drawing Mother in the Tidal Flat), 갤러리 룩스, 서울

2009     풍경의 거리만큼(The Gap Between Us), 파랑갤러리, 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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