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cred
윤위동 개인전
2026년 03월 05일(목) - 2026년 03월 28일(토)
[서문]
윤위동의 회화는 대상을 그리지만, 그 대상을 설명하지 않는다. 화면에 등장하는 형상들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기호가 아니라, 시간과 조건이 물질에 개입한 결과로서 존재한다. 돌, 모래, 금, 결정체로 보이는 것들은 단순한 자연의 상징도 은유도 아니다. 그것들은 쉽게 부서질 수 있었으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 더 이상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 하나의 지점에 놓인 존재들이다.
윤위동은 오랫동안 ‘닮게 그리는 것’에서 출발했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마주한 고전 회화의 충격,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서 느꼈던 강한 희열은 그의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재현만으로는 자신의 질문에 도달할 수 없다는 한계에 이르렀다. 이후 작가의 관심은 사물이 무엇을 닮았는가가 아니라, 존재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는가로 이동한다.
이 전환의 계기에는 삶의 어려움과 긴 시간의 산책이 있었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마주한 돌, 물, 낙엽, 곤충과 같은 사물들은 윤위동에게 인간의 삶과 죽음, 존재의 조건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그렇게 그는 사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자연을 묘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시간이 물질에 작용하여 남긴 흔적을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이 작업에서 ‘완성’은 성취나 결론을 의미하지 않는다. 완성이란 멈춤이 아니라, 변화가 비가역적으로 고정되는 순간이다. 완성 이후 존재는 안정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조건 속으로 이동한다. 윤위동의 회화는 바로 그 완성 직후의 불안정한 상태, 다음 순환을 예비하는 지점에 머문다.
작가가 말하는 ‘순환’은 같은 상태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나선형의 이동처럼, 이전과는 다른 밀도로 통과하는 과정이다.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은 동일한 지점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모든 경험은 축적되고, 그 축적이 다음 상태를 만든다. 돌은 이 작업에서 완성의 상징이 아니라, 완성 이후에도 다시 변화로 나아가는 존재다. 단단해졌다고 해서 운동이 멈추지 않듯, 금이 되었다고 해서 순환이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돌의 상태는 인간을 연상시키지만, 단순한 은유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돌은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않지만 묵묵히 시간을 견딘다. 윤위동은 그 상태에서 오히려 인간의 삶과 더 닮은 모습을 발견한다.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하다는 태도, 견딘 시간이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화면 전체에 낮은 온도로 스며 있다.
윤위동이 말하는 신성함(The Sacred)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숭배의 대상도, 초월의 영역도 아니다. 신성함은 특별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의미가 부여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 쉽게 소거될 수 있었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상태, 오랜 시간을 통과하며 획득한 존재의 밀도, 그 자체가 신성함이다.
The Sacred은 신성함을 정의하기 위한 전시가 아니다. 오히려 그 개념이 동시대의 감각 속에서 어떻게 다시 사유될 수 있는지를 묻는 자리다. 이 전시는 완성을 찬미하지 않으며 다만 견딘 시간이 존재를 다음 상태로 이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제시할 뿐이다.
The Sacred은 찬란한 결론이 아니라, 조용히 도달한 하나의 지점이다. 그리고 그 지점은 다시 다음 순환을 시작하기에 충분히 단단하다.
-갤러리나우 송지원 큐레이터
[평론]
견딘 시간의 형상, 완성을 향한 존재의 회화
윤위동의 회화는 사물을 그리지만, 사물에 머무르지 않는다. 견딘 시간만이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작가는 돌과 모래, 물과 금이라는 자연의 형상을 통해 존재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어 가는지를 묻는다. 여기서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견뎌야만 통과할 수 있는 조건이며, 존재는 그 시간을 통과한 흔적으로 남는다. 이러한 세계관은 존재의 유한성을 전제로 한다. 모든 존재는 언젠가 사라지며,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는가가 중요해진다. 이 지점에서 윤위동의 작업은 근대 이후 존재론 철학의 핵심 질문과 맞닿아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Being and Time』(1927)에서 죽음을 “현존재(Dasein)가 더 이상 어떠한 가능성도 가질 수 없게 되는 가능성(Death is the possibility of the absolute impossibility of Dasein)”으로 규정한다. 이 정의에서 죽음은 단순한 생의 종결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자신의 유한성을 가장 근본적으로 마주하는 한계 상황을 의미한다. 윤위동의 회화는 이 사유를 시각적 언어로 번역한다. 작가의 화면에 등장하는 돌과 금, 크리스탈은 영원한 상징이 아니라, 수많은 압력과 마찰을 견뎌낸 결과로서의 상태다. 작가노트에서 말하듯, “모래는 수분을 머금고 열과 압력을 견디어야 비로소 돌이 되고, 보석이 된다.” 완성은 단번에 도달되는 결과가 아니라, 시간을 통과한 존재만이 획득할 수 있는 상태다. 작가는 구원의 서사가 아니라, 끝이 있기에 더욱 진실해지는 존재의 시간을 말한다. 윤위동의 회화는 묻는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견디며, 어떤 존재로 남고 있는가.
재현에서 사유로, 사물을 통해 인간을 말하다
작가는 재현에서 출발했다. 네 살 무렵 신문에서 우연히 접한 고전 유화는 “그림이 이렇게 그려질 수 있다”는 충격으로 남았고, 작가는 그때의 영감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사물을 닮게 그리는 일에 몰두해왔다.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까지 작가의 관심은 일관되게 재현에 있었다. 작가의 초기 관심은 인물화에 있었다. 형상을 정확히 붙잡고, 닮게 그리는 행위에서 작가는 강한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재현은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른다. 닮게 그리는 행위만으로는 더 이상 세계를 설명할 수 없었다. 실험은 이어졌지만 작업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고, 삶은 어려워졌다. 이 시기의 답답함은 작가를 외부로 이끌었다. 하루 세 시간에 이르는 산책 속에서 작가는 자연을 다시 보게 되었다. 돌, 물, 낙엽, 곤충. 반복적으로 마주한 사물들은 점차 질문이 되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작가는 더 이상 인체를 통해 인간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사물을 통해 인간의 삶을 사유한다. 2016년을 전후로 시작된 전환의 깨달음은 윤위동 작업 세계의 근간을 이룬다. 작가의 회화에서 돌은 자연물이자 인간의 비유다. “모래가 수분을 머금고, 열과 압력을 견디며 돌이 된다는 것, 극한의 조건을 통과한 것이 금강석이 된다”는 자연의 이치는 인간이 견뎌내야 하는 삶의 구조와 닮아 있다. 인간 역시 수많은 사건과 고통을 통과하며 단단해진다. 작가는 이 과정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견딤의 시간, 그 자체’를 존엄한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순환과 완성, 견딘 존재의 신성함
윤위동 작업의 핵심 개념은 ‘순환’이다. 그러나 이 순환은 동일한 반복이 아니다. 작가는 우주와 자연의 운동을 ‘나선형’으로 이해한다. 지구와 별들은 단 한 번도 같은 자리를 지나지 않는다. 삶과 죽음 역시 반복되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다. 이러한 인식에서 윤회(輪回)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이동이 된다. 작가의 작업 노트에 반복되는 ‘시간’과 ‘견딤’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 존재론적 태도로 확장된다. 견딤은 고통을 미화하는 언어가 아니라, 인격적 완성을 위한 필연적 조건이다. 회화는 이미지를 만드는 행위이자, 시간을 축적하는 방식이 된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타인을 설득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그 사유는 재료와 형식을 통해 타인에게 도달한다. 재료 선택 역시 개념에 종속된다. 다양한 재료는 회화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개념에 가장 적합한 형식을 찾는 과정이다. 특히 금(金)은 윤위동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금은 가치의 상징이자, 역학적으로 ‘완성’을 뜻하는 물질이다. 돌의 완성은 곧 인간의 완성을 향한 비유이며, 금은 신성한 상태로 등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The Sacred》는 윤위동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다. 신성함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견뎌낸 존재에 대한 태도다. 돌이든 무당벌레 같은 작은 생명이든, 살아낸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신성하다는 뜻이다. 작가는 애써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연약함 너머의 존엄’으로 바라본다. 윤위동의 회화는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끝이 있기에, 견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존재의 자취를 기록한 회화적 사유라 할 수 있다.
완성 이후가 아닌, 다음 순환을 향하여
윤위동의 작업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보다는, 다음 단계를 예비하는 상태에 가깝다. 작가가 말하는 ‘완성’은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순환으로 진입하기 위한 조건이다. 돌이 금이 되었다고 해서 운동이 멈추지 않듯이, 완성은 정지의 언어가 아니라 이동의 다른 이름이다. 최근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형식의 확장보다 상태에 대한 집중이다. 화면은 점점 설명을 줄이고, 결과보다 과정을 더 많이 드러낸다. 표면에 남은 흔적, 눌린 자국, 결정화된 물질은 상징으로 읽히기보다 시간이 머문 자리로 기능한다. 이는 작가가 더 이상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어떤 상태로 남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작업은 서사의 확장이 아니라, 밀도의 심화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돌은 여전히 중심에 있겠지만, 그 의미는 인간의 비유를 넘어 하나의 존재론적 상태로 더 구체화될 것이다. 물과 모래, 금의 관계 또한 상징적 대비를 넘어, 서로 침투하고 변형시키는 구조로 다뤄질 것이다. 이는 순환을 하나의 이야기로 제시하기보다, 작동하는 조건들을 하나의 장(場)으로 만드는 작가만의 탁월함으로 읽어야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신성함의 태도다. 윤위동의 ‘신성함’은 숭고함을 넘어선다. 살아낸 존재에 대한 존중, 혹은 겸손함이 화면 전반에 스며 있다는 뜻이다. 이는 위로나 기원의 언어를 넘어, 존재를 대하는 윤리적 시선에 가깝다. 앞으로의 작업에서 이 신성함은 더 은밀한 방식으로, 더 단단하게 작동할 것이다. 작가는 여전히 자연을 다루지만, 관심은 형상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에 있다. 그 질서는 완성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견뎌낸 시간만이 다음 상태로 이행할 수 있음을 말할 뿐이다. 이러한 태도는 동시대 미술의 속도와 과잉된 의미 생산과 거리를 두며, 느리지만 축적되는 회화의 가능성을 다시 묻는다. 따라서 향후 작업은 새로운 소재의 발견보다, 이미 다루고 있는 존재의 조건을 얼마나 깊이 성찰하는가로 집약될 것이다.
“순환은 반복이 아니라, 견딘 시간이 존재를 완성으로 이끄는 방식이다. (Circulation is not repetition; it is the way endured time leads a being toward completion.)” - 윤위동 인터뷰 중에서
- 안현정(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작가노트]
나는 모래위를 지나가는 돌을 통해 나를 포함한 모든 만물의 순환과 완성의 과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더 쉬운 이해를 위해 돌을 사람에 비유코자한다. 사람마다 저마다 처해진 환경과 상황이 다르고 매순간의 선택도 다르지만 누구나 자신의 삶을 위해 애쓰며 나아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작품 속 돌들도 각기 다양한 환경속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열과 압력을 이겨내는 수많은 과정을 반복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났을것이다.
무수한 순환으로 성장한 그들이 조약돌도 되고, 바위도 되고, 금덩이도 되고, 크리스탈도 되며, 금강석도 되고, 달도 되고, 지구도 되어 우주를 빛나게 한다.
나는 돌의 자취를 통해 우리 인생 자취를 표현하고자 항상 고민한다. 인생의 환경도 주기에 따라 변하듯이 내가 그리는 돌의 모습도 매번 같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음 단계를 항상 고민한다.
나는 돌의 순환과 완성을 우리의 삶에 투영시키는 작업을 계속 할것이다. 좋은 환경이든 열악한 환경이든 자신의 삶이 자신에게는 가장 귀하고 행복하면서도 한편 힘든것이다. 그래서 그 삶을 살아내는 모든 이가 참 귀하고 아름답다. 이러한 삶 자체가 하늘의 선물이 아닐까.
돌은 살아있다. 죽지않는다. 순환을 반복하다 완성에 이를 뿐. 우리도 살아있다. 죽지않는다. 순환하는 중이고 완성이 올것이다.
-윤위동
[약력]
윤위동 Yoon Weedong
교육
2008 중앙대학교 서양화학과 졸업
개인전
2026 The sacred, 갤러리나우, 서울, 한국
2025 사실을 넘어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 서울. 한국
2025 the homonym 자하미술관 서울 한국
2024 윤위동 개인전 아르때케이. 울산. 한국
2024 윤위동 개인전 나마갤러리. 서울 한국
2024 윤위동 개인전 스타벅스 가나아트파크점. 프린트베이커리. 경기도. 한국
2024 갤러리아 프린트베이커리 윤위동 개인전.
2024 윤위동 개인전 갤러리 휴. 부산. 한국
2024 윤위동 개인전. 아르때캐이 갤러리. 서울. 한국
2023 윤위동 개인전. 반디트라소 갤러리.. 서울. 한국
2022 윤위동 개인전. 프린트베이커리 나인원 한남점. 서울. 한국
2022 윤위동 개인전 나마갤러리. 서울. 한국.
2022 윤위동 개인전. 프린트베이커리 롯데월드타워점. 서울. 한국
2021 윤위동 개인전. ‘순환’ 본화랑. 서울. 한국.
2021 윤위동 개인전. 프린트베이커리 부산 센텀점. 부산. 한국.
2021 MONOLOGUE,갤러리 반드트라소. 부암동. 서울. 한국.
2021 윤위동 개인전. 에비뉴엘 월드타워 프린트베이커리. 미니겔러리.서울. 한국.
2019 사계(四季) 윤위동 개인전. 더 트리니티갤러리. 옥인동. 서울. 한국.
2018 MONOLOGUE 윤위동 개인전. 성북동 254갤러리. 성북동. 서울, 한국.
2017 ‘실존회화’ 인산 윤위동 개인전. 장흥아트파크 어린이 미술관.
2013 《通하다》, 서울옥션 강남점. 서울. 한국,
2010 한원미술관 초대 개인전 《CONTRAST》,서울. 한국.
2009 윤위동 회화전. 인사아트센터 1층 전시장. 서울. 한국
2인전
2022 이태수, 윤위동 2인전. 무용. 띠오겔러리. 서울. 한국
2021 ‘유충목,윤위동 2인전’ 유진갤러리. 서울 한국
단체전
2025 싱가폴아트페어 나마갤러리 싱가폴
아트위크 아트코코갤러리 룩셈부르크
키아프 반디트라소갤러리. A hall 서울 한국
3인전 지석철 김영성 윤위동 아트코드갤러리 논현동 서울 한국
동경아트페어 나마갤러리. 동경, 일본
오사카아트페어 반디트라소갤러리 오사카 일본
2024 3인전 윤위동 김일중 황재원 위갤러리 청담동. 서울 한국
find the nature .윤위동,김동형,이시산,한재혁 오브제후드 갤러리 부산 아난티코브. 한국
보통의 자연 3인전 윤위동,권지안.박정용 반디트라소 갤러리 서울 한국
Art Madrid 아트페어. 마드리드 스페인
디파인 서울. 성수동 에스팩토리. 서울 한국
2023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반디트라소갤러리. 삼성동 코엑스.B홀. 서울.한국
어포더블아트페어홍콩. 갤러리 가이아. 홍콩.
All that realism. 한만영에서 윤위동까지. 갤러리나우. 서울 한국,
2022 “소소한 전시@크리스마스” 반디트라소 갤러리. 삼청동. 서울. 한국.
타이페이 국제아트페어. 띠오갤러리. 타이완 타이페이 세계문화센터.
스페이스 제인앤클레어 개관전. 서울.,한국
2021 “나누는 기쁨전” 컬러비트갤러리. 서울 한국
크리스마스 선물전. 프린트베이커리.롯데월드타워.서울.한국.
“My First Collection”展 대경뮤지엄.서울,한국
RE-BRAND NEW & NFT 인식의 틀 확장. 유진갤러리. 서울. 한국.
layers on layers, 오브제후드갤러리. 부산 .한국.
2020 “선물전”신세계백화점. 강남. 한국.
URBAN CONTEMPORARY ART. 삼성동 코엑스홀. C 1&2 서울. 한국
한국국제아트페어.온라인 뷰잉룸, 반디트라소겔러리. 서울. 한국
어반브레이크 아트아시아. 본화랑. 코엑스 C홀. 서울. 한국.
“인영 문웅 콜렉션”. 세종문화회관. 서울. 한국
코로나 피해돕기 온라인 자선 경매..서울옥션. 서울. 한국.
2019 길리어드 2019 희망겔러리 We believe. 서울. 한국
자문박축제.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서울. 한국
아티스트 토크 클래스 아난티 청담. 트리니티겔러리. 서울. 한국
2016 2016 아트울산. Bagic $ Realism. 울산대공원 남문광장. 울산. 한국
2014 《너를보고 웃는다》, 서울옥션 강남점. 서울. 한국
《面面 시대의 얼굴》, 가나아트센터.서울. 한국
《Equilibrium_Sound of Silence: 윤위동,이만나 2인전》, csp111artspace
2013 《힐링‘ 3인전》, CSP. 서울. 한국
33인의 3호 삼삼한 그림전. cps111artspace. 서울. 한국
2012 한국국제아트페어. 가나아트갤러리. 코엑스. 서울. 한국
Hyper-Realist》 Albemarle 갤러리, 런던, 영국
《contast" Moorhouse》, 하다갤러리. 런던, 영국
《Group Gurad》, 인터알리아갤러리. 서울. 한국
《Love is 37.5》, 가나아트센터. 서울. 한국
《Mother Image in Korea art》,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서울. 한국
《Hiling Camp》, 가나아트센터. 서울. 한국
화가의 의자전. 인사아트센터. 서울. 한국
2011 《2011 Summer Show》, HADA갤러리, 런던. 영국
《New Artist Festiva》, 공평아트센터 서울. 한국
2010 《키아프 한국국제아트페어. 반디트라소 갤러리. 코엑스. 서울. 한국
Sotheby's “Forming Expressions 3Approaches to Beauty》,Artlink Gallery, 이스라엘.
《부산비엔날레》, Busan center. 부산. 한국
《IN The Wild》, 인터알리아. 서울. 한국
《Global Hibrid》, "Hancock University, Art&Design Center, 캘리포니아.미국
2008 《ASYAAF》 아시아 청년작가 축제, 구 서울역사. 서울. 한국
《Sotheby's "Korea Now”》, Artlink Gallery, 이스라엘 텔아비브.
레지던시
2011~ 가나장흥아틀리에
작품 소장
한원미술관, 자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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