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ANG BIN


<일획>


One Stroke



09a2140ea1eef.jpg


임 상 빈  I  One Stroke 302, 91x72.7cm, Acrylic on canvas, 2025



[서문]

 

 일획 One Stroke


던져진 한 획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과 같이 숙명적인 ‘어떤 것’으로의 시작점을 갖는다. 그 던져진 한 획은 오랜 시간 부모와 사회의 정성으로 자라듯이 덧 칠에 덧 칠을 더하면서 자라고 완성된다.

지난번 전시<화획>시리즈에서 보여 주었던 다 획의 작품에서는 감성적이고 자연적으로 솟구친 에너지들의 즉흥성이 드러난 작업이라면 이번 전시는 한획으로만 집중하여 본질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더 밀도 있는 ‘화획’을 보여준다. 빅뱅에서 모든 시공이 시작된 것처럼 모든 것은 하나에서부터 시작된다. 끝없이 진동하는 공간의 시원에 원자와 같은 개체가 심오하게 우주를 탐험하듯 한 획 한 획은, 나이테가 쌓이듯이 하나하나의 고유명사로 다듬어져서 개성적인 하나의 초상화처럼 완성된다. 카르마의 법칙과 같이 숙명적으로 시작된 한 획의 형상은 켜켜이 쌓아 올리는 글레이징 방법으로 반복적으로 축적된, 즉 긴 시간의 성장과정을 거쳐 단순한 형태나 칼라가 아니라 깊은 생각이나 의미를 간직한 미묘한 감정적 형태가 드러난다. 마침내 하나의 인격체와 같은 고유한 모습으로 거듭난다. 그리하여 이번 전시는 철학적이고도 촉각적인 경험을 통해 풍부한 예술적 담론을 만들어가는 자리가 될 것이다.

사진, 회화, 드로잉,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임상빈은 서울대학교(서양화과 학사),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예일대 대학원에서 회화. 판화를 전공 석사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교 티처스칼리지에서 미술교육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뉴욕에서 7회, 서울에서 9회, 부산에서 6회 등 총 22회의 개인전을 진행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 줄 콜린스 스미스 미술관, 웨스트 컬렉션, 아티움 미술관 등 주요 기관 뿐 아니라, 우리은행, 캐논(미국 본사), AT&T 본사, 도이치 뱅크 쿤스트, UBS, 싱가포르 은행 등의 기업 컬렉션에 소장되었다.

 

-이순심 (갤러리나우 대표)

 

 

 

 

[작가노트]


일획 (One Stroke)

 

 이번 전시명은 ‘일획(One Stroke)’이다. 내 그림은 삶에 대한 통찰을 꿈꾸며 궁극에는 보다 본질적인 ‘일획성’에 주목한다. 이는 ‘일획이 만획이고 만획이 일획’이라는 명말 청초의 작가 석도(1642-1707)의 ‘일획론’과 통한다. 그렇다. 결국에는 내가 모든 것이고 우리 모두가 나다. 혹은,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고 이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비유컨대, 이는 모두를 아우르는 이론을 표방하는 ‘초끈이론’인 양, 결국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건 하나의 선, 즉 0차원 입자로 고정된 점이라기보다는 연결되거나 끊어지며 움직이는 1차원 끈이다. 혹은, 정갈하게 두 손을 하늘로 합장하고 내 심지를 굳히며 특정 기운을 발동하여 결의를 다잡는 ‘선사상’이다. 분명한 건, 유달리 하나의 획에 긴 시간 주목하며 기운의 불을 지피다 보니, 개인적으로 참 많은 걸 내려놓고 참 많은 걸 얻었다.

그림은 수행이다. 한 획마다 내 존재의 의미를 번민한다. 돌이켜보면, 내 부모님은 ‘나’를 낳고자 하신 적이 없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저 보통명사 ‘사람’을 바랬을 수밖에. 그런데 이런, 고유명사 ‘임상빈’이 태어났다. “어, 여기가 어디, 이게 뭐야?” 이와 같이 의도와 무관하게 그저 던져진 우리를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는 ‘피투(被投)된 존재’라고 부른다. 그러나 세월이 가며 점차 의식이 자라나니 이젠 없던 욕심도 생긴다. “기왕 태어난 거 ‘내 인생의 감독’이 되어 열심히 살아야지…” 이와 같이 이제는 주체적인 인생을 살고자 스스로 던지는 우리를 그는 ‘기투(企投)된 존재’라고 부른다.

그림은 세상이다. 애초에 일획이 빈 화면에 더해지면 비로소 ‘한 우주의 빅뱅’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유컨대, 내 그림은 바로 ‘다중우주’의 향연이다. 혹은, ‘내 안의 수많은 생각들’, ‘서로 다른 작은 아이들’, 아니면 ‘나와 너, 우리를 아우르는 함께 사는 세상’이다. 물론 맨 처음 던져진 획(피투된 존재)은 고개를 갸우뚱, 아직 그 미래를 모른다. 그렇지만 그 획은 일종의 업보로서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니 그저 나름 책임질 뿐, 도무지 쉽게 없앨 수가 없다. 물론 한 우주가 성장하고 발달할 때면 좌충우돌 별의별 단계를 다 겪게 마련이다. 예컨대, 처음에는 붉은 색감이 전신을 감싼다. 그러다 선회하여 푸른 색감으로 변모한다. 이와 같이 때에 따라 의식과 무의식이 춤을 추며 알게 모르게 노선이 수정되고 미래가 바뀌며 조금씩 개별자로서 특성화(기투된 존재)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수련의 기간이 끝나고 마침내 하산할 때가 온다. 그래, 이제 이 모습에 책임져야지. 그렇게 그림은 완성된다.

그림은 인생이다. 이번 전시에서 내 그림은 특히 위로 향하는 방향에 주목했다. 비유컨대, 한 그림은 ‘한 명의 얼굴 초상화’이다. 나이가 들면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듯이, 일종의 나이테처럼 그동안 켜켜이 쌓인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머금는다. 돌이켜보면, 내 삶을 영위하며 나를 보듬어준 수많은 붓질, 색감, 촉감이 결국 지금 여기 이 모양을 형성했다. 물론 그 지난한 자라나는 과정을 복기해 보면 종종 기계적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때때로 실수도 하고 문제도 많았으니. 그러나 누군 안 그러랴? 결국,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결과적으로 모든 걸 가치롭게 만드는 미다스의 손, 즉 ‘예술적인 승화’만이 답이다. 그래, 누구나 열과 성을 다한다면 모두의 인생, 나름 다 찬란하다. 마찬가지로 서로 책임질 얼굴은 다르지만 내 모든 그림, 스스로 고유한 기준에 따라 각자 ‘뿌듯한 만족감’으로 충만하길 바란다.

그림은 기운이다. 무럭무럭 자라나며 힘이 뻗치는 아이인 양, 내 그림은 생명력으로 충만한 원형질(protoplasmic) 기운을 담아낸 일종의 추상적인 ‘잠재풍경(Latent Scape)’이다. 이를 보다 생생한 경험으로 시각화하고자, 특히 촉각적 노동의 가치에 주목했다. 비유컨대, 꾸준한 운동을 통해 근육의 크기와 무게를 증대하고 또렷하게 근육선을 가다듬듯이, 작업 과정 중에 한없이 매만지며 양감이 넘치는 부조적인 결을 구축하다 보면 모종의 쾌가 몰려온다. 돌이켜보면,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는 내게 ‘그림 스킨십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를테면 ‘끈적한 물성’과 ‘다층적 흔적’의 ‘회화적 촉감’에 대한 갈망.

그림은 단꿈이다. 아이의 기질과 꿈은 다양하듯이, 내 그림은 여러 모양의 마음 풍경에 잠재한 ‘원형 구조(porta-structures)’의 설레는 가능성이다. 내 경험상, 그림을 그리며 서서히 구축되는 모양에 은유적, 연상적, 혹은 확률적인 방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술적인 상상력’을 음미하면, 그야말로 생생한 ‘우주여행’ 따로 없다. 그렇다면 비유컨대, ‘잠재풍경’은 아직 어떻게 자라날지 알 수 없어 마냥 설레는 생각의 ‘씨앗’이다. 앞으로 발현될 특성을 연쇄적이거나 산발적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DNA적인 확률 정보가 종합적으로 기록된 ‘청사진’이다. 마침내 수학 고수가 되려면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해당 구조의 작동 원리를 내포한 ‘절대 공식’이다. 무엇이든 흥미롭게 연상하고 애정으로 다듬으며 호흡으로 생성하는 ‘잠재적 가능성(latent possibility)’이 충만한 ‘X함수’다. 필요에 따라 바라는 대로 어떤 내용물도 유려하게 담아내는 넉넉한 ‘그릇’이다. 만들고 싶은 모양이 있으면 언제라도 다시 찍어내는 ‘판형틀’이다. 때때로 복잡한 세상에 매몰되어 길을 잃는 우리에게 나름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나침반’이다. 수많은 선택지에 결정을 미루며 불안할 때 다시금 본질에 충실하자며 좋은 말 듬뿍해주는 듬직한 ‘멘토’다. 형형색색 수많은 사연을 모으고 응축하며 추출한 원액으로 만든 몸에 좋은 ‘종합 비타민’이다.

그림은 근본이다. 이와 같이 ‘잠재풍경’을 음미하다 보면, 내 그림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소위 우리를 ‘내 인생의 무림고수’로 탈바꿈하는 예술적인 ‘훈련장’, 즉, 내 마음의 ‘도서관’이자 ‘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세상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더더욱 기본 원리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화기관의 ‘개별적인 모양’은 다 다르지만, ‘총체적인 작동원리’는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소화기관 전문의는 후자를 숙지하고 전자를 대하는 전문가이다. 그리고 마치 붕어빵 판형틀이 있으면 계속 이를 찍어낼 수 있듯이, 통상적으로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이를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현명하다. 결국,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호도되기보다는, 일종의 ‘유형학(typology)적 접근’으로서 전체를 아우르며 공통된 구조를 파악하는 ‘거시적인 조망력’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한껏 우리 내면의 ‘심미안’을 고양하면, 처음에는 도무지 오리무중, 대책 없던 미지의 영역이 점차 선명해질 수도.

그림은 마음이다. 동시대 작가로서 나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람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고취하며 앞으로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결국, 내 그림은 사람이 사람을 연민하는 ‘사람 가치의 탐닉’이다. 이를테면 갑자기 던져진 ‘일획’과 찬찬히 다듬는 ‘다획’의 과정을 통해 일종의 ‘돈오점수(頓悟漸修)’적인 수련을 바탕으로 비로소 ‘피투된 존재’는 ‘기투된 존재’로 거듭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생생한 경험은 마치 호랑이가 사람으로 인해 가죽을 남기듯이 ‘촉각적인 노동’으로 그 실체적 증거력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일획은 나 자신, 즉 얼굴과 인생, 내가 이룬 업적이다. 혹은,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결국에는 나를 초월하여 궁극의 모양으로 환원되며 무엇이든 연상 가능한 원형질인 ‘잠재풍경’, 즉 통찰의 근본원리와 무궁무진한 적용실제를 담보하는 ‘형이상학적 이데아’이다. 부디 이번 전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진지하게 나누며, 기왕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의 부족함을 온정으로 보듬고, 더불어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미래를 진정으로 모색하는 알찬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임상빈

 

 

[평론]

 

『일획, 무한의 시작 – 임상빈의 일획 시리즈에 관한 미학적 성찰』


“일획이 만 획이요, 만 획이 일획으로 돌아간다.”

동양 회화의 대가 석도(石濤)는 단 한 획에 우주의 이치를 담았다. 이는 단순한 선 하나가 아니라, 세계를 여는 첫 숨결이며, 회화가 존재론적 깊이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임상빈의 ‘일획’ 시리즈는 이 고전적 철학을 토대로, 오늘날 사회와 관계에 대한 사유를 회화로 던진다.


그의 화면 위에서 하나의 붓질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각각의 획은 방향도, 속도도, 색도 다르며 마치 제각기 생명을 지닌 존재처럼 자신만의 호흡과 결을 드러낸다. 이 다채로운 흐름은 복수성과 단일성이 공존하는 리듬 위에 놓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감각을 넘어 정신의 깊이로 이끈다. 임상빈의 작업은 이 순간, 칸트가 말한 ‘무목적적 합목적성’, 즉 어떤 목적도 없지만 조화로운 질서가 느껴지는 그 독특한 미학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우리는 무엇인지 말할 수 없지만, 분명 의미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상태 속에서 그의 붓질을 바라보게 된다.


그 하나의 붓질은 꽃처럼, 바람처럼, 파도처럼, 수풀처럼, 도시처럼, 군중처럼 그 하나 하나가 일어서고 연결된다.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말하는 ‘형이상학’의 개념은 형체를 갖기 이전, 말해지기 전의 세계를 상징한다. ‘획’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세상에 드러나기 직전의 본질, 가능성과 에너지의 흔적이다. 그는 각 붓질을 초상화처럼 여긴다. 작가에게 있어 각 획은 제자와 같다. 상상력을 통해 길러지고 훈련되어, 결국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간다. 그렇게 한 획 한 획은 고유한 생명력을 얻고, 작가의 손에서 벗어나 사회적 존재가 된다. 이 과정에는 단순한 표현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그가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써 창조의 윤리이자 책임감이다.


임상빈의 작품은 철학적 사유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칸트의 인식론뿐만 아니라 보들리야르의 시뮬라크라,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이르기까지, 그는 동양의 감각적 미학과 서양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조율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피투된 존재’와 ‘기투된 존재’는 작가가 그리는 획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다. 획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자, 그 존재가 다시 세계에 의미를 던지는 기호가 된다. 

이것은 캔버스 위에서 초끈이론의 이미지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진동이 하나의 선으로 구체화되는 장(場)을 이룬다. 각 획은 물리적 실체이자 동시에 보이지 않는 의미망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현(現)이며, 회화는 그렇게 미시적인 차원의 존재들이 얽혀 있는 우주의 단면처럼 펼쳐진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되, 감각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임상빈의 회화는 이 보이지 않는 리듬, 세계의 진동을 붓질이라는 매개를 통해 드러내는 일종의 시적 실천이다.


그에게 있어 첫 획은 우주의 빅뱅과 같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 내려진 그 첫 붓질은, 무(無)에서 유(有)가 태어나는 찰나이자,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시작이다. 임상빈은 이러한 우주의 원형적 이미지를 통해 각 작품을 서로 다른 세계이자, 동시에 연결된 다중 우주의 일부로 상상한다. 색과 선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상상력, 존재에 대한 물음을 품은 상징이 된다.


사회적 관점에서도 그의 ‘일획’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각각의 붓질은 고유하고 독립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화면 안에서 서로를 조화롭게 감싸며 공존한다. 이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개별 존재가 갖는 역할과 가치를 은유적으로 풀어낸 것이며, 현대 사회 속 예술이 수행해야 할 윤리적, 철학적 사유의 지점을 상기시킨다.


획 하나하나가 작가에게는 하나의 사회적 존재이며, 그들이 화면을 구성하고 운율을 이루며, 결국은 우리 시대의 미학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결국 임상빈의 회화는 과정 그 자체를 중시하는 예술 행위다. 완성된 이미지보다, 획이 태어나고, 흐르고, 충돌하고, 소멸하는 그 ‘사이’의 순간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그의 ‘일획’은 단지 회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를 비추는 거울, 우리 사회의 질서를 되묻는 질문, 형이상학적 사유와 감각이 만나는 경계의 예술이다.


임상빈의 전시 ‘일획’ 는 지금 순식간에 이미지를 만드는 AI 기술과 로봇 기술 시대에서도 예술이 가능한 이유이자, 예술이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를 말해준다.


예술로 그리는 '일획'은 그렇게 시작되며, 결코 끝나지 않는다.

 

- 성원선 (미술평론가)

 


 

[약력]


임상빈 (Sangbin IM, 任相彬)



학력
2012-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

2011 콜럼비아 대학원 티처스 칼리지, 미술과 미술교육 박사과정 졸업

2005 예일 대학원 미술대학, 회화와 판화 석사과정 졸업 (한미교육위원단 풀브라이트 장학생)

2001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25 갤러리나우, 일획 One Stroke, 서울

2024 열정갤러리, 잠재풍경: 영상과 사진 그리고 회화, 서울

2024 예태미술관, 찬란한 울림: 화획(畵劃)을 그리다, 경상북도, 칠곡군

2023 슈페리어 갤러리, 꿈의 풍경, 서울

2022 반얀트리, 임상빈: 마음풍경, 서울

2022 정부서울청사, 다양한 생각이 어울리며 성장하는, 서울

2022 갤러리 나우, 임상빈: 화획(畵劃), 서울

2021 소울아트스페이스, 임상빈: 구조, 부산

2021 세브란스 아트 스페이스, 임상빈: 바라보기, 서울

2019 라이언 리 갤러리, 임상빈: 인공지능과 나, 뉴욕, 미국

2019 소울아트스페이스, 임상빈: 인공, 부산

2017 소울아트스페이스, 임상빈: 에네르기아, 부산

2016 라이언 리 갤러리, 임상빈: 콜렉션, 뉴욕, 미국

2015 소울아트스페이스, 임상빈: 사상, 부산

2014 소울아트스페이스, 남극대륙, 부산

2013 라이언 리 갤러리, 임상빈: 광경, 서울

2012 소울아트스페이스, 도시에서, 부산

2010 메리 라이언 갤러리, 임상빈: 합류, 뉴욕, 미국

2010 PKM 트리니티 갤러리, 임상빈: 만남, 서울

2008 갤러리 썬 컨템포러리, 임상빈: 최근작업, 서울

2008 엘2컨템포러리 갤러리, 임상빈: 최근작업, 엘에이, 미국

2008 월터 렌델 갤러리, 최근 작업, 뉴욕, 미국

2008 미트마켓 갤러리, 네이춰링, 워싱턴 디씨, 미국*

2007 미키윅김 컨템포러리 아트, 임상빈, 취리히, 스위스

2007 자넷오 갤러리, 드림스케이프, 서울

2006 크리스틴로즈 갤러리, 임상빈 사진, 뉴욕, 미국

2006 가나아트센터, 임상빈 & 뉴스케이프, 서울

2005 존 첼시 아트센터, 몸 I 도시 I 역사, 뉴욕, 미국

2003 성곡미술관. 하이브리드, 3인3색, 서울*

2002 갤러리 썬 & 문, 하이브리드 스케이프, 서울*

2002 인데코 카페 갤러리, 몸 흔적, 서울*

2002 갤러리 보다, 스캔된 나라, 서울*

2001 갤러리 피플,2001 갤러리 피플, 아날로지탈, 서울* 이인전


이인전

2008 네이춰링, 미트마켓 갤러리, 워싱턴 디씨, 미국

2003 하이브리드. 3인3색 , 성곡미술관, 서울

2002 하이브리드 스케이프, 갤러리 썬 & 문, 서울

         몸 흔적, 인데코 카페 갤러리, 서울

        스캔된 나라, 갤러리 보다, 서울


주요 단체전

2024 로스엔젤레스미술관, 디지털 목격자: 디자인, 사진, 영화의 혁명, 엘에이, 미국

2024 경북대학교미술관, 우리라는 이름의 바다, 대구

2023 서울클럽, 예술, 서울

2023 삼각산시민청 1관 & 2관, 계절을 넘어서, 서울*
2022 뮤지엄 원, 치유의 기술, 부산

2022 정부서울청사, 이보다 더 밝을 순 없다, 서울*

2022 정부서울청사, 의인화의 마법, 서울*
2021 중구문화재단 충무아트홀, 홀로새의 미래, 서울

2021 정부서울청사, 꽃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기, 서울*

2020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 과천

2020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전개, 서울

2019 김중업건축박물관, 공간기억, 안양

2019 한원미술관, 멘토 멘티, 서울

2018 중랑아트센터, 쉼, 서울

2018 세화미술관, 원더시티, 서울

20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삼라만상: 김환기에서 양푸동까지, 서울

2017 포항문화예술회관, 아델란테, 포항

2016 K현대미술관, 로비스트, 서울

2016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사진비엔날레,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대구

2016 경기도 미술관, 공간의 발견, 안산

2016 당진문예의전당, 번역된 건축, 충청남도, 당진

2015 아티움 미술관, 미소 속의 마술, 빅토리아-가스테이즈, 스페인

2015 서울대학교 미술관, 숭고의 마조히즘, 서울

2014 경기도 미술관, 크로스 장르, 안산

2014 성신여자대학교 미술관, 사람의 향기를 느끼다, 서울

2014 포르타밧 미술관,동시적 울림,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2014 홍콩 컨벤션과 전시관, 아트 바젤-홍콩, 홍콩, 중국

2013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의 눈, 과천

2012 홍콩 컨벤션과 전시관, 아트 홍콩, 홍콩, 중국

2012 부두 94, 아모리 쇼, 뉴욕, 미국

2011 금호 미술관, 고은사진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크로스 스케이프, 서울, 부산, 완주군

2011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사진 축제, 서울

2011 홍콩 컨벤션과 전시관, 아트 홍콩, 홍콩, 중국

2011 경기도 미술관, 친절한 현대미술, 안산

2010 줄 콜린스 스미스 미술관, 1072 소사이어티 전시, 어본, 알라바마, 미국

2010 예술의 전당, 교차문화적 전망, 서울

2010 대구 문화예술회관, 2010 대구 사진 비엔날레: 우리를 부르는 풍경, 대구

2009 가든 5,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2009, 서울

2009 스위스 전시관, 아트 40 바젤, 바젤, 스위스

2009 부두 94, 아모리 쇼, 뉴욕, 미국

2009 경기도 미술관, 공공의 걸작, 안산

2008 여수 문화관, 기쁨의 정원, 여수 국제 예술 페스티발, 여수

2008 스위스 전시관, 아트 39 바젤, 바젤, 스위스

2007 창원문화예술회관, 복숭아꽃, 살구꽃, 창원

2006 태평양 아시아 뮤지엄, 연회: 감각의 향연, 패서디나, 미국

2006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_시티 서울 2006,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서울

2005 서울시립미술관, 청계천을 거닐다, 서울

2005 상하이 젠다이 모마, 일렉트로스케이프, 상하이, 중국

2005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 남서울분관, 서울청년미술제, 서울

2004 우제길 미술관, 자화경(自畵景), 광주

2004 킴멜 센터, 이즘 갈라, 뉴욕, 미국

2003 예술의 전당, 빛과 색의 탐험, 서울

2003 서울시립미술관, 물 위를 걷는 사람들, 청계천 프로젝트, 서울

2003 대구시민회관, 뉴 프론티어, 대구

2002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_시티 서울 2002,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서울

2002 서울대학교 박물관, 몸과 옷, 파리 제 1대학 교류전, 서울

2002 아이치 미술관, 오사카 현대미술관, 이와테 미술관, 한민족의 빛과 색, 순회전, 일본

2002 서울시립미술관, 한민족의 빛과 색, 개관전, 서울

2001 서울대학교 박물관, 역사와 의식-독도, 서울* 전시감독


주요 출판물

2023 임상빈, 예술적 얼굴과 감정조절 (박영사)
2022 임상빈, 예술방법론 (박영사)

2020 임상빈, 예술적 감정조절 (박영사)

2020 임상빈, 예술은 우리를 꿈꾼다 (마로니에북스)

2020 임상빈, 예술적 얼굴책 (박영사)

2019 임상빈,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박영사)

2019 임상빈, 예술적 인문학 그리고 통찰 (마로니에북스)

1995 임상빈, 폐허- 그리고 현실에서 나다 (문학통신)

 

주요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노스캐롤라이나 미술관 (라레이, 미국)

경기도미술관 (안산), 줄 콜린스 스미스 미술관 (알라바마, 미국)

아티움 미술관 (빅토리아 - 가스테이즈, 스페인), 서울대학교 박물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과천)

한미교육위원단,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서울), 웨스트콜렉션 (펜실베니아, 미국)

한-아세안 센터 (서울), 박영장학문화재단 (서울), 현대문학 (서울), 시대인재 (서울)

허스트 타워 (뉴욕, 미국), 클리브랜드대학병원 (오하이오, 미국)

캐논 미국 본사 (뉴욕, 미국), 도이치 뱅크 쿤스트 (홍콩, 중국)

유비에스 (취리히, 스위스), 싱가포르 은행 (시드니, 호주), 우리은행 (서울)

에이티&티 본사 (택사스, 미국),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서울)

콜럼비아 대학원 티처스 칼리지 (뉴욕, 미국), 엘리사 몬테 댄스 (뉴욕)

셜리반 & 크롬웰 (뉴욕, 미국), 디엘에이 파이퍼 (뉴욕, 미국), 윌키 파 & 겔러퍼 (뉴욕, 미국)

퀸 엠마누엘 어콰트 & 설리번 (로스엔젤레스, 미국), 워커힐 호텔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 (서울), 라카이 샌드파인 리조트 (강릉)

신발 혹은 맨발 미술관 (크루이쇼탬, 벨기에)



[작품 이미지] 

d4e8b37070809.jpg

임 상 빈  I  One Stroke 6.12, 40.9x31.8cm, Acrylic on canvas, 2025


e85dc500f9502.jpg

임 상 빈  I  One Stroke 105, 53x45.5cm, Acrylic on canvas, 2024


8eaeb56ab1873.jpg

임 상 빈  I  One Stroke 304, 72.7x91cm, Acrylic on canvas, 2025


c08aa63a257b5.jpg

임 상 빈  I  One Stroke 6.10, 40.9x31.8cm, Acrylic on canvas, 2025


d42ff3bebadd6.jpg

임 상 빈  I  One Stroke 6.11, 31.8x40.9cm, Acrylic on canvas, 2025


6977f55a8716c.jpg

임 상 빈  I  One Stroke 66, 40.9x31.8cm, Acrylic on canvas, 2024


bbe86907c2ccc.jpg

임 상 빈  I  One Stroke 151, 65.1x53cm, Acrylic on canvas, 2024


e80d09e786434.jpg

임 상 빈  I  One Stroke 6.14, 31.8x40.9cm, Acrylic on canvas, 2025


29b11dbf4a1ae.jpg

임 상 빈  I  One Stroke 303, 91x72.7cm, Acrylic on canvas, 2025


6e19f02bfaaf0.jpg

임 상 빈  I  One Stroke 82, 45.5x 27.3cm, Acrylic on canvas, 2025



27d10a3bc4acf.jpg


Paintings-Met Museum, 96.8x76.2cm, Lightjet print, Edition of 5, 2010


"It is a sacred place of modern civilization and a noisy concert hall."


IM SANG BIN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로젝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로젝트의 작품들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직접 촬영된 수많은 소장품의 사진 이미지들 중에서 선택, 구성되어 만들어졌다. 이 프로젝트는 총 9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제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세계 문화를 분류, 체계화하여 전시하는 방식대로, 현대 미술, 서양 종교 회화, 서양 회화, 부족 미술, 동아시아 미술, 페르시아 미술, 이집트 미술, 그리스와 로마 미술, 서양 조각으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실제 박물관을 꼭 방문해보아야만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존재하는 소장품을 충실히 재현, 기록하고자 한다기 보다 나 스스로 창의적이고 비평적인 큐레이터가 되어 실제에 기반했으나 실제를 떠난, 나의 의도와 표현이 중요한, 나만의 상상의 미술관을 만들고자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거대 문화기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동시대적 풍경을 의도에 맞게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해내고자 나는 다양한 시각적 방법론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이 프로젝트의 모든 작품에서 실제 전시장의 크기가 과장되고, 디스플레이와 조명이 변경되고, 채도와 명도 대비효과가 강조되었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는 각 전시장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다 다르다. 이는 소장품의 수, 그리고 미술관에서 판단하는 문화적 중요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나는 작품들의 공간 구성 등 여러 시각적 요소들을 비슷하게 조율하고자 이들을 정확히 같은 크기의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숨은 의도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는 중요한 서구문화기관을 통해 드러나는 문화 헤게모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이 미술관에서 대표되는 각 문화공간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반성적으로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이 미술관이 역사적으로 미국 소장문화의 진풍경을 제공하고자 범주화된 분류체계를 지속적으로 도입, 발전시켜 오면서 서구 미술사 지식체계를 구축하는데 상당히 일조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은 의심스러운 단계를 넘어 다분히 그럴법한 일이다. 나아가, 이 미술관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기록소라기 보다 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문화기관, 나아가 세계사를 자신의 이해관계를 통해 이해, 교육하려는 정치권력의 한 단면으로 비판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로젝트를 아홉 개의 작품으로 대등하게 구성하여 상대적인 비교와 감상을 유도하였다. 이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계층적으로 세분화해서 전시된 세계문화사의 지형도를 조망해보고 짚어보기 위함이었다. 예를 들어, 이 미술관의 다른 전시장들은 문화사적이고 지역적인 장소에 의해 분류되어 있는 반면, 부족 미술 전시장은 전 세계에서 수집된 모든 종류의 원시 미술품과 유물들을 전시한다. 부족 미술은 동시대 권력구조 하에서 철저한 객체가 된 것이다. 이집트 미술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소장품은 그 이면을 돌아보면, 문화제를 약탈당한 실제 이집트의 상황과 그들의 문화제 반환 노력을 상기시킨다. 동아시아 미술 전시장과 페르시아 미술 전시장에서 느껴지는 상대적인 소장품의 열세는 다른 문화를 대표하는 서구 문화기관의 정통성에 의심을 가지게 만든다. 물론 대표하는 주체와 대표되는 객체의 권력관계는 실로 쉽지 않은 문제이다. 고대 석상의 파편 조각들은 원래의 장소에서 옮겨져서 액자나 좌대 등 현대식 미술품 설치법에 따라 디스플레이 되어있다. 이는 전세계에 산재되어 있는 문화제가 당연히 있어야 할 보금자리는 현대미술관이라는 뒤바뀐 맥락적 사고를 조장하여 사람들이 원래의 문맥에서 그 해당 문화제를 상상하고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보는 관점에 따라 언제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사실 뉴욕에 살면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인상적인 소장품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한편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이슈들이 머리 속을 맴돌았고, 그래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와 가상, 진짜와 모조, 원본과 조작,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탐험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느끼게 된 것이, 인간은 자고로 복잡하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도, 미술관이 보여주는 문화의 진풍경은 아직도 끊임없이 나를 매혹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미술관은 종종 여러 문제를 노출하면서도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는 장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애증은 여행을 위한 완벽한 동반자, 결국 중요한 것은 즐기는 것이다.

임상빈


d7a0554ae6adb.jpg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 139.7x83.8cm, dye sublimation on aluminium, 2021

f4126e678f0a5.jpg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3, 139.7x81cm, dye sublimation on aluminium, 2021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roject

Each work in this series depicts a selection of actual works, chosen and photographed by me, from the collections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Each represents the reconstruction of cultures as showcased by the actual museum: Modern art, Western religious painting, Western painting, Tribal art, East Asian art, Persian art, Egyptian art, Greek and Roman art, and Western sculpture. There is no need for the viewer to have visited the actual museum to appreciate this project; it embodies my own imaginary museum from the perspective of a creative and critical curator, rather than being an artist’s rendering of the collection as it exists.

 The nine works in the series exaggerate the sizes of the real-life exhibition space, makes changes to the displays and lighting, and enhances color saturation and contrasts in order to create a vivid visual image of the megalomaniacal “personality” of institution. In addition, these nine images intentionally are the same size and similar in presentation in order to question the “importance” of the cultures represented in the museum, based on the relative size allotted to each cultural collection in the actual museum, and to critique the hegemony of this particular Western institution. The suspicion is that Metropolitan Museum of Art has historically contributed to the construction of art historical knowledge and provided the spectacles of American collection culture through particular categorization and arrangement. In this regard, the museum cannot claim that it presents history as it is, but provides a subjective interpretation of history based on the particular point of view of its political and cultural interests that makes particular sense of the world.

 Along these same lines, the project draws attention to a particular emerging worldview, of hierarchical departmentalization. For instance, the Tribal art section of the actual museum presents all the primitive cultural art and objects from all over the world, whereas other sections are more or less categorized by their cultural/geographical locations. The Egyptian section contrast itself with the real Egypt, which is in a constant battle to reclaim its’ own cultural assets. The relative shortage of East Asian and Persian artifacts casts doubt on the Western institution’s legitimacy in representing other cultures. Fragments of ancient statues, relocated from their native lands, are displayed in modern modes of installation, on frames and pedestals, giving the impression that the modern museum is the natural home for these cultural belongings from all over the world. These display styles also make it difficult for people to imagine the artifacts in their original contexts.

 The impressive collections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have always commanded my attention, and the issues above have long lingered in my mind, triggering this project. The project has encouraged me to explore back and forth between the real and the virtual, the actual and the simulated, the original and the manipulated, and the analog and the digital. As a complex human being, I wholeheartedly admit that the cultural spectacle still fascinates me as I criticize it. The museum is a problematic yet amazing place to experience. Hatred and affection are perfect traveling companions.

IM Sangbin


0e66e5039b417.jpg

Morgan Library, 99x99cm, dye sublimation on aluminium, 2021

596b2195b5649.jpg

Museum of American Indian, 99x99cm, dye sublimation on aluminium, 2021

2d1c241ad8123.jpg

People 1, 63.5x213.3cm(upside), 99x213.3cm(downside), Lightjet print, Edition of 5, 2008
c80f3c193f2cd.jpg

Modern Art, 202.4x121.9cm, Lightjet print, Edition of 5, 2009


화획(畵劃) 프로젝트

나는 중고등학교부터 줄곧 회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군대를 제대하던 1999년, 인터넷을 처음 접하며 급격한 디지털화를 경험했다. 이런 나는 아날로그 문화 속에서 자라나 성인이 되어 디지털 문화를 본격적으로 접한 X세대로 분류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스캐너를 활용하며 디지털 작업을 시작했고 후에는 디지털카메라와 포스트프로덕션으로 이미지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한 번에 한 장만 찍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미지를 찍고는 이를 이리저리 엮어 익숙하면서도 초현실적인 광경을 만들며 자본주의 풍경의 달콤하고 처연한 아이러니를 드러냈다.

사진은 시각적으로 매끈한 표면을 뽐내며 완성된 세상을 보는 창이다. 나는 사진의 힘은 마치 언제 내가 수줍어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냐는 듯, 당당하게 우리 앞에 자신을 뽐내는 풍경의 ‘초실제적 극사실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초실제적 극사실성’이란 너무 사실적이어서 실제를 초월할(실제보다 더욱 실제인 것만 같은) 정도이거나, 혹은 실제를 초과해 버리는(정도를 넘어 이제는 실제에서 이탈해버리는) 상태를 지칭한다.

한편으로, 회화는 촉각적으로 축적된 지층을 뽐내며 그 과정을 재생하는 영상이다. 나는 회화의 힘은 마치 언제나 그래왔다는 듯이, 보면 볼수록 우리 앞에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는 ‘물질적 정신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질적 정신성’이란 너무 물질적이어서 정신계가 도무지 보이지 않거나 너무 정신적이어서 비물질적일 수밖에 없는 양 극단이 아닌, 드러내고 싶은 바를 물질로 표현하려는 의지(표현주의적 표출) 혹은 물성의 한계에 조건 지어지는 상태(인상주의적 습득)를 지칭한다.

한동안 나는 사진에 주목하면서도 회화, 드로잉,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는 나는 사진과 회화 작품을 보여준다. 이 둘은 시각적으로는 다르지만 개념적으로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둘 다 부분과 전체와의 관계, 그리고 기운생동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시의 회화 작품은 완전히 새로운 프로젝트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화획(畵劃) 프로젝트(Strokes project)는 수많은 획들이 얽히고설키며 기운생동(氣韻生動) 하는 광경을 표현한다. 석도(石濤·1641~1720)는 ‘일획이 만 획’이라 하였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만 획이 일획’이다. 일획은 만 획 속에 있고 만 획은 일획에 다름 아니기에. 결국,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사안에 골몰하며 이를 심화하거나 혹은 오만 갈래로 파생하며 이를 확장하는 잠재태로서의 획의 외침, 즉 의인화와 공론화의 장이다.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대표적인 네 개의 비유, 다음과 같다:

첫째, ‘생각은 생명’이다. 일획은 씨앗, 즉 고유의 생명을 품은 하나의 생각이다. 이를테면 머릿속에서 불현듯 생각 1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러자 생각 2는 저쪽에서 이쪽으로 미끄러진다. 그런데 생각 3은 여기서 은근슬쩍 피어난다. 그러니 생각 4가 저기서 화들짝 날 좀 보라며 요동친다. 그러나 생각 5는 여기쯤에서 단단히 자리를 틀고 앉았다. 한편으로 생각 6은 둥둥 떠오르며 비집고 올라간다. (이하 중략…) 그런데 개별 획은 추상적인 흔적이다. 따라서 일종의 X 함수다. 언제라도 이에 적합한 내용물을 채울 수 있는. 혹은 범인이 남긴 의문의 단서다. 비범한 통찰력으로 추리가 가능한. 혹은 우리가 마주한 묘한 자극이다. 예술적 상상력으로 다양한 서사를 풀어내는.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판도라의 상자(Pandora box), 난상 토론으로 촉발되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혹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알고리즘(algorism)을 통한 심층학습(deep learning)이 반영하는 집단지성의 지형도라 할 수 있다. 때에 따라 한참을 바라보면 머리가 좋아지거나 생각이 정리될 수도.


둘째, ‘나는 다’다. 누구나 그렇듯이 내 안엔 내가 너무나 많다. 즉, 내 안의 수많은 작은 아이들, 의도나 목적이 종종 상이하니 개성이 넘친다. 마치 다중우주인 양, 서로 다른 우주에 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서로 간에 ‘반목과 투쟁’을 일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함께 하는 그들의 모습이 희한하게 말이 되는 등, 아름다운 ‘화합과 상생’의 오케스트라를 연출하기도 하니. 즉 나는 나, 아무리 세포분열이 일어나도 부분과 전체는 여러 방식으로 얽히고설키며 관련되게 마련이다.

한편으로, 마음 한가득 수많은 나, 왁자지껄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임시적으로나마 대표격으로 반장이 선출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다른 눈으로 보면 언제라도 반장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며 서로 본연의 모습에 충실할 것을 역설했다. 하지만, 정작 내 역할은 그 처한 맥락에 따라 자꾸 바뀌게 마련이다. 예컨대, 때로는 작가고 때로는 아빠인 나, 나름대로 다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이 프로젝트에서 오로지 하나의 획만 반장이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늘 여기서는 내가 반장, 내일 거기서는 네가 반장이다. 아니, 누구나 반장이다. 혹은 굳이 반장이 필요 없다. 중요한 건 주어진 맥락에 따라 의미를 생산하며 그때그때 정을 나누는 상호작용 대화, 그 자체다.


셋째, ‘운동은 근육질’이다. 열심히 운동하면 근육이 발달하며 가시적으로 티가 난다. 이를테면 보디빌딩(body building)을 하면 ‘양감’, 즉 근육량이 늘고, ‘질감’, 즉 근육선이 분리된다. 여기다 기름을 바르면 ‘색채’, 즉 근육이 광이 난다. 머리카락으로 비유컨대, ‘양감’은 머리숱을 풍성하게 하는 붙임 머리, ‘질감’은 머릿결을 선명하게 하는 브릿지 탈색, 그리고 ‘색채’는 머리색을 도드라지게 하는 염색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애매한 개념을 방치하지 않고 고민하며 열심히 갈고닦으면 이에 대한 논리적 구조화가 서서히 진행되며 마침내 사상이 명료해진다. 이를 표현하기 위한 내 작업 방식은 이렇다. 우선, ‘우연성’과 ‘즉흥성’을 적극 활용하며 애초의 획을 내지른다. 비유컨대, 애매한 출생, 즉 나도 모르게 태어난 세상이다. 다음, 여기에 ‘필연성’과 ‘의도성’을 부여하고자 오랜 시간에 걸쳐 이를 다듬는다. 비유컨대, 의도된 성장, 즉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러다 보면 점차적으로 ‘무게감’이 생기며 그 ‘목소리’가 또렷해지는 등, 각각의 획이 마침내 바라는 바를 이루는 느낌을 받는다. 비유컨대, 완성의 성취, 즉 내가 만족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조형적으로 보면 이는 표현을 재현하는 ‘구상적 추상화’이다. 통상적인 추상화가 몸의 마력을 통한 다분히 우연적인 흔적 남기기에 집중한다면 나는 여기에 이를 더욱 필연적으로 실재화하는 후반 제작(post-production)의 단계를 더해 더욱 생생한 체감을 유도하기에. 한편으로, 내용적으로 보면 이는 의미를 형성하는 ‘당위적 정당화’이다. 과거형으로 말하자면 일어난 일에는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기에, 혹은 미래형으로 말하자면 그러고 나면 앞으로 다 그렇게 말이 되기에.


넷째, ‘이미지는 이야기’다. 얼굴의 모양에 따라 풍기는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나의 저서, ‘예술적 얼굴책’과 ‘예술적 감정조절’은 14개의 ‘음양비율(陰陽比率)’, 즉 순서대로 균비(均非), 소대(小大), 종횡(縱橫), 천심(淺深), 원방(圓方), 곡직(曲直), 노청(老靑), 유강(柔剛), 탁명(濁明), 담농(淡濃), 습건(濕乾), 후전(後前), 하상(下上), 앙측(央側)비율을 제시한다. 참고로, 각 단어의 앞 글자는 음기, 그리고 뒷 글자는 양기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구체적인 얼굴, 그리고 추상적인 감정에서 이미지와 이야기를 연결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비율은 단지 얼굴과 감정뿐만 아니라 온갖 사물과 현상(森羅萬象)에 다 적용 가능하다. 그러고 보면 이 프로젝트의 각각의 획은 그저 이미지가 아니다. 오히려, 나름의 이야기이다. 예컨대, ‘종횡비율’에 따르면 수직으로 긴 획은 ‘종비(縱比)’가 강해 나 홀로 간직한다. 반면에 수평으로 넓은 획은 ‘횡비(橫比)’가 강해 남에게 터놓는다. 그리고 ‘곡직비율’에 따르면 구불구불한 획은 ‘곡비(曲比)’가 강해 이리저리 꼰다. 그리고 직선적인 획은 ‘직비(直比)’가 강해 대놓고 확실하다.

그렇다면 개별 획은 온갖 감정을 다 가진 총천연색 묶음 인격체, 즉 개별 초상화다. 그리고 모든 획은 각양각색 다층 군상, 즉 집단 초상화다. 이를 하나씩, 혹은 서로 관계 맺으며 음미하다 보면 그야말로 끝이 없을 수밖에. 모두 다 화자 그리고 모두 다 독자, 오늘도 계속되는 천일야화 따로 없다. 예술은 이야기, 예술가는 이야기꾼.


결국,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자기 고유의, 혹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수많은 아우성을 다양한 형태와 색상과 질감의 맛으로 곱씹으며 끊임없이 내 마음을 수련한다. 그러면서 이미지가 소리가 되고 소리가 이미지가 되는, 혹은 무형의 몸짓이 유형의 재질이 되고, 온갖 색상이 서로 다른 마음이 되는 마법의 전율을 경험한다. 때로는 워낙 섬세하니 불안하고 때로는 워낙 당연하니 행복한 순간이다. 그야말로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임상빈


9c9cde494b6ba.jpg

Strokes_L3, 130.3x97cm, Acrylic on canvas, 2022

3b628fc386015.jpg

Strokes_L5, 145.5x112.1cm, Acrylic on canvas, 2022

a841b79139e1e.jpg

Strokes_L8, 145.5x112.1cm, acrylic on canvas, 2022


Strokes project

I have been majoring in painting since junior high school. In 1999, when I was discharged from the army, I first encountered digital world with use of internet. I am often classified as Generation X who grew up in an analog culture and later experienced digital culture. At first, I started working digitally using a scanner, and later produced images with a digital camera with post-production. Instead of taking just one picture at a time, numerous images were weaved together to create a familiar yet surreal scene which reveals the sweet and pitiful irony of the capitalist landscape.


Photography is a window into the perfected world boasting refined and smooth surface. The power of photography is to present ‘surreality of hyperrealism’ in scenery with ever presenting confidence as if it has never been shy. 'Surreality of hyperrealism' refers to a state that is too real to be transcendental (or more real than real), or to exceed reality (which is now far away from reality). On the other hand, painting is a video that reproduces the process by showing off the tactually accumulated strata. The power of painting is in the presence of ‘materiality of spirituality’ which gradually reveals itself before our eyes. 'Materiality of Spirituality' does not refer to the two extremes, being overly materialistic nor overly spiritual. Rather, it refers to an intention (expressive manifestation) of using materials to make visualization, or to a status (impressive acceptance) of human condition confined and conditioned by materials.

I have been working on various projects including painting, drawing, installation, and video with focus on photography. In this exhibition, I present photographs and paintings. The two are visually quite different, but conceptually similar. Both expres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art and the whole and vitality of gestural energy. In particular, the painting works in this exhibition is a completely new project with further description as follows:

The Strokes project expresses a scene of vital energy where numerous strokes are intertwined. Seokdo(石濤, 1641-1720) said that ‘one stroke is ten thousand strokes’. And for the same reason, 'ten thousand strokes are one stroke'. Because one stroke is within ten thousand strokes, and ten thousand strokes are nothing but one stroke. In the end, this project is a place for personification to focus on one issue and deepen it or derive it into multiple branches.


Four analogies aligned with this project are:

First, ‘thought is life’. One stroke is a seed, that is, a thought with its own life. For example, in my head, thought 1 suddenly rushes from one side to the other. Then thought 2 slides in this way. Thought 3 is secretly blooming as thought 4 is up and down over there, asking me to look. But thought 5 is firmly seated still. On the other side, thought 6 floats and squeaks. (Omitted below) Each stroke is an abstract trace. So, it is like a function of x in which can be inputted with suitable contents at any time. It can also be viewed as clues left behind in a crime scene that can be inferred with extraordinary insight or a strange stimulus unraveling various narratives with artistic imagination. If so, this project can be Pandora's box that are connected back-to-back, brainstorming triggered by a discussion, or deep learning through artificial intelligence algorithms that reflect a topographical map of collective intelligence. If you make a close observation, you may feel enlightened or more clarity.


Second, ‘I am everything’. Like everyone else, there are too many of me in me. In other words, there are many inner children in me, and their intentions and purposes are often different having full of individuality. They live in different universes, as if there were multiverses. It does not always mean 'fighting' with each other. Sometimes the way they live together makes a strange sense, presenting a beautiful orchestra of 'harmony and coexistence'. In other words, I am myself, no matter how often cell divisions occur and the parts and the whole are intertwined and associated in various ways. Sometimes I have the experience of being elected as a temporary representative, even in a situation where discussions amongst multiple mes never seem to end. However, the caveat is that the leader can change at any time with a different point of view. Confucius emphasized that they should be faithful to each other's true self, saying, 'The lord, the lord, the vassal, the vassal, the father, the father and the son, the son(君君臣臣父父子子)'. However, my role tends to change repeatedly depending on the context in which I am in it. For example, sometimes as an artist and sometimes as a father, all is important in its own way. Likewise, there is no reason why only one stroke should be the leader in this project. Today I am the leader, tomorrow you may be the leader. No, everyone is the leader. Or else you don't even have to be one. What is important is the interactive dialogue itself, which produces meaning in each context and exchanges affection.


Third, ‘exercise is muscular’. If you exercise hard, your muscles will develop, and you will see visible marks. For example, when you do bodybuilding, you increase the 'volume', the muscle mass, and the 'texture', the muscle definition. If you apply oil to the body, the 'color' becomes shiny. In analogy to hair, 'volume' is a hair extension that makes hair ample, 'texture' is a bleach that brightens the hair, and 'color' is a dye that makes the hair color stand out. Likewise, if an ambiguous concept is not neglected, and if it is contemplated and refined diligently, the logical structuring will gradually progress and finally the idea will become clear. My way of expressing this concept is as follows: First, the stroke initially is made by utilizing 'contingency' and 'spontaneity'. In a metaphorical way, it is an ambiguous birth without me being aware of. Next, it is refined over a long period of time to give it ‘necessity’ and ‘intentionality’. Metaphorically it is the intended growth, which is the world I live in. You will gradually gain a sense of 'weight' and the 'voice' becomes clearer, as each stroke finally achieves its intended goal. In a metaphorical way, it is the achievement of perfection, that is, the world I am satisfied with. Then, from a formative point of view, this is a 'figurative abstraction' that reproduces expression. If ordinary abstraction focuses on leaving a largely accidental trace through the magical power of human, I add the stage of post-production to make it inevitably real to induce a more vivid experience. On the other hand, in terms of content, this is an ‘unavoidable justification’ that forms meaning. In the past tense, everything that happened must have happened for a reason, or in the future tense, because it happened everything should make sense thereafter.


Fourth, ‘images are stories’. Face shapes emit different feelings. My books, 'Artistic Face Book' and 'Artistic Emotional Control', contain 'the 14 Yin-Yang Ratio'. These are the Balanced-Asymmetrical, the Small-Big, the Lengthy-Wide, the Shallow-Deep, the Round-Angular, the Winding-Straight, the Old-Young, the Soft-Strong, the Dim-Bright, the Light-Dense, the Wet-Dry, the Backward-Forward, the Downward-Upward, and the Inward-Outward Ratio. For reference, the first word corresponds to yin, and the last word corresponds to yang. Through this, we try to connect images and stories in concrete faces and abstract emotions. However, this ratio is applicable not only to faces and emotions, but to all kinds of objects and phenomena. Each stroke in this project is not just an image. Rather, it is a story of its own. For example, according to 'the Lengthy-Wide Ratio', a vertically long stroke has a strong 'the Lengthy Ratio', so one keeps it to oneself. On the other hand, horizontally wide strokes have a strong ‘the Wide Ratio’, so one shares it with others. According to 'the Winding-Straight Ratio', a squiggly stroke has a strong 'the Winding Ratio', so it is tangled here and there. Straight stroke has a strong ‘the Straight Ratio’, so it is directly clear.

Therefore, each individual stroke is full-colored collective personalities with all kinds of emotions, i.e., individual portraits. Every Stroke is a multi-layered group, which is a group portrait. If you savor them individually or in relation to each other, there will be no end to it. Everyone is a narrator and a reader, and the Thousand and One Nights story continues on. Art is a story, and artist is a storyteller.

In essence, through this project, I constantly practice my mind by ruminating on numerous cries of one's own or in relation to each other, with the taste of various shapes, colors, and textures. In doing so, one can experience the thrill of magic, in which an image becomes a sound, a sound becomes an image, or an intangible gesture becomes a tangible material, and all colors become different minds. Sometimes it's so delicate. It's insecure. Sometimes it's so natural that it's a moment of bliss. The world really depends on what you make of it. Through this project, I hope you will have a valuable time to reflect on your own mind.

IM Sangbin


96aac65a9970c.jpg

Strokes_S1, 72.7x72.7cm, Acrylic on canvas, 2021

5fc9571dd9196.jpg

Strokes_S2, 72.7x72.7cm, Acrylic on canvas, 2021

3011bd86af4fc.jpg

Strokes_S4, 72.7x72.7cm, Acrylic on canvas, 2021

d5c77234c7670.jpg

Strokes_XS2, 65.1x53cm, Acrylic on canvas, 2021


Artist interview with Im Sangbin when solo exhibition at galleryNoW



CEO : Lee Soon Shimㅣ Business License : 101-87-00172
Address : 16, Eonju-ro 152-gil, Gangnam-gu, Seoul, Korea , 06021

ㅣ CS : +82 (0)2-725-2930 ㅣ Fax : +82 (0)2-725-6999

Copyright ⓒ gallery NoW